LET ME LIVE, EVIL GOD
살려주세요, 악신님!
INFO
단편소설, 트친님과 썰 주고받고 만듬.
잭x샨 드림소설 AU
“우웨엑, 어, 으으..! 어아아!! 이 배신자아!!”
술에 흠뻑 젖은 고함소리에 주변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저 고성방가를 막았을 정도로 온갖 소리들을 다 토해낸다.
절반이 헛구역질이고 의미없는 고함소리지만 조용한 숲 한가운데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는 모자라지 않다.
“야아! 남, 우웩… 남자, 남자가 생겼다고? 어! 남자가 뭔데 다 팽개치고 도망을 가! 어어!?”
절반조차 비우지 못한 술병을 밀어내려던 손은 힘없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향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몸은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널부러진다.
자리에 주저앉은 이는 수치심마저 잊어버렸는지 바닥을 퍽퍽 두드려가며 한탄을 토해낸다.
“연구는 누가~ 연구는 누가해~ 농사야? 나 혼자 못해~ 나 혼자 하라는겨나고오오~ 내가, 어? 내가 하자고 했냐고오~”
제발 누군가가 말려줬으면 좋을 법한 추태를 부린다. 분명 친구가 있었다면 술도 못 마시는 애가 왜 술에 손을 댔냐며 등을 두드려줬을 터다.
문제는 그 친구가 남자와 눈이 맞아 난데없이 도망갔다는 사실이겠지.
한참을 바닥에서 청승부리던 이는 술에서 깬 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발걸음이 너무나 곧아, 정신을 차린 듯 싶었지만…….
“아! 모르겄다! 혼! 돈! 파아 괴~애! 다죽어! 다! 이히, 히히힉!!”
입을 열고 말을 토하자마자 다시 발걸음이 비틀린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도 곧장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넓다고 보기 힘든 방 안은 수 많은 책과 약물, 표본 등으로 가득 차있으며 벽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진과 술식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본래라면 오늘도 이 마법진들을 연구하고 보수해야겠지만…
“알게뭐람! 어! 임프, 임프소환!! 어! 신혼집 폭발!!”
덥석 주워든 펜에 운용이 어려운 마력을 있는대로 부워담고서는 눈에 보이는 아무 서책이나 들어올려 그 안의 마법진을 마구 적어내리기 시작한다.
술에 취한 탓인지 군데군데 번지고 비뚤어지고 심지어는 언어도 다르게 써버렸지만 알게 무언가.
화풀이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한 마법진도 엉망으로 그려낼 수 있다.
“야아!! 하하하!!! 임프! 임프으으!! 임프를 소환하자! 신.. 우웩, 우웁…!”
어으, 못해먹겠다. 임프고 나발이고 자야겠어, 라며 펜을 내던진 이는 입을 양손으로 막은 채 비틀비틀 걸어나간다.
바로 잠들진 못하겠지만 술기운이 조금이라도 가시고 어지러움이 가라앉으면 바로 잠들 수 있으리라.
새벽녘이 밝아오는 어두운 시간. 살짝 열려있는 창문 틈으로 스며든 안개무리가 바닥의 수식들에 맞붙자 회색의 어두운 빛무리로 스멀스멀 살아 움직인다.
그 것이 빛인지, 아니면 빛이 아닌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벌어진 틈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외형을 가진 ‘존재’ 였다.
전신은 썩다 못해 백골이었으며 사지는 못과 쇠사슬에 박혀 제 기능과 구실을 해내지 못할 성 싶다.
얼굴은 살점과 가죽이 남아있지만 크게 썩어, 한쪽 뺨과 턱이 다 드러나있다.
너덜너덜하기 짝이 없는 진한 회색빛 천을 두른 몸 주변에는 먼지인지 빛무리인지 모를 것이 끝임없이 넘실거린다.
신의 후광을 따라한 듯, 뼈로 된 성화가 있으나 완전하지 않은 탓에 원형조차 갖추지 못했음에도 두겹으로 감싸여져 있다.
깊이 패인 눈덩이 안쪽은 빛이 통하지 않아 시야가 통하는 것 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해, 도대체 산자라고는 볼 수 없는 몰골이라 할 수 있다.
땅에 박혀있어야 할 말뚝들은 쇠사슬을 끌어내며 차르륵, 차르륵 시끄럽게 울부짖는다.
하나하나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는 잠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한다. 청량한 공기와 깨끗한 시야는 자신이 기거하고있던 회색사막과 상이하다.
아주 희미한 부름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것 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예언을 바라는 기도라고 하기엔 파장이 약했고 소환이라고 하기엔 조잡스럽기 짝이없었다.
그럼에도 응한 것은 혹여 자신이 남겨놓은 신도가 있을까 싶어서였지만…….
자신을 따른다 자칭하는 신도들이 이렇게 ‘좁고 지저분한’ 곳에서 제물조차 없는 소환 의식을 벌였을 리 없다.
거기다 바닥 외의 마법진은 그럴싸하게 완성되어있건만, 자신을 부른 소환진은 세 살 배기 어린 것이 그렸다 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발새발인데다 조잡하기 짝이 없다.
이정도면 신성모독… 아니, 신성모욕에 가깝다.
‘죽일까.’
제 감정을 파악했는지 등 뒤의 성화가 뿌득, 우득, 소리를 내며 형태를 바꿔간다.
그에 반응하듯 사지를 결박한 사슬과 말뚝이 절걱 절걱 소리를 내며 떨리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폭주를 할 순 없는 노릇. 잠깐 숨을 가다듬은 존재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다 열린 문을 발견했다.
뭐 이리 작은 문이 다 있는가.
문에 다가서는 발걸음은 그 높다란 키만큼이나 넓고 빠르다. 분명 말뚝박힌 사지임에도 걷는 내내 발소리조차 울리지 않는다.
방문을 더 크게 열어젖히고 허리를 숙여 밖으로 나오자, 보이는 것은 넓은 창고로 보이는 공간 전체를 꽉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쌓여있는…
‘술이군.’
혈액 외의 액체를 본 기간이 얼마만인가. 자신에게 제를 올리던 신자들을 다 죽인 이후로 술은 한 방울 조차 본 기억이 없다.
제법 괜찮아보이는 것을 집어들고 손끝으로 병목을 그은 뒤 가볍게 치자 깔끔하게 잘려나간다.
알싸한 향, 미적지근한 온도탓에 알코올 특유의 냄새가 치고 올라온다. 기억에 있는 한, 이 정도로 독하고 강한 술은 공물로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 동안 미물들의 주조기술이 발전한건가.
‘썩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군.’
본래 받아야 할 제물에 비하면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허나 공물은 공물. 이 정도의 양이라면 눈을 감아줄 법 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협소하고 부족한 부름을 메울 정도의 공물이지 않은가. 노력이 가상하니 ‘맛’ 정도는 확인해주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을 마시듯 입을 벌린 틈으로 술을 붓는다.
독하다 못해 타들어가는 향을 내며 사라지는 술은 전에 없던 저릿함을 혀 끝에 선사한다.
인간이라면 샷 한 잔에 맛이 갈 정도로 독한 술을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키는 광경이 심상치 않지만 술 기운은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건 나쁘지 않군.
빈 병을 잠깐 흔들어, 잔향을 확인하고는 아무데나 대충 던져놓는다.
본래 유리라는 것은 던지면 깨지게 되어있으나 제법 둔탁한 소리만 났을 뿐,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호오.’
술 말고도 무언가 발전시킨 것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새로운 병 하나를 들어올려 또다시 병목을 잘라낸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그 것이 한 짝, 두 짝이 되고……. 새벽 언저리에 걸쳐져 은은하게 빛나던 햇빛이 한창 솟아있을 즈음.
“으, 으으으…. 허으으으…….”
죽은 자를 억지로 세웠을 때 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 무슨 역겨운 소리인가. 죽은 것을 깨우는 소리는 수천, 수만년을 들어도 익숙해지기는커녕 더욱 꺼려지는 소리다.
“속이… 으……. 물, 무울…”
무언가를 찾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물을 따르는 맑은 소리와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소리가 몇 번 이어진다.
“와, 내가 미쳤지… 무슨 술이 이렇게 독해.”
작게 투덜거리며 물을 마시는 소리가 몇 번 더 이어진다. 푸하, 하는 소리와 함께 한숨을 뱉던 목소리는 ‘그걸 걔는 어떻게 매번 마시고도 멀쩡한거야…’ 라며 탄식을 뱉는다.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마력과 미미한 존재감. 소환을 시도한 신도 혹은 술자임이 틀림없다.
“일단, 어제 난리친 것부터 치우고…… 오?”
드디어 술 저장고에 당도한 이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형태와 비슷하지만 짐승의 귀를 달고 있는 생명은 지치고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다.
“…….”
[…….]
안색이 좋진 않았으나 핏기는 있었던 얼굴이 새파랗게, 새하얗게 질린다.
보이지 않는 얼굴, 몸을 감싸는 회색빛 빛 혹은 먼지 혹은 안개. 사지에 박혀있는 말뚝과 살아움직이는 사슬. 뼈로 이루어진 두겹의 성… 성화…….
“허, 허…어어어…….”
털썩.
만전의 상태가 아닌 몸이 ‘존재’의 악성을 고스란히 마주했으니 버텨낼 리 없다.
소환이 되자마자 저 혼자 돌아다닌 탓인가. 생명체에 제 존재가 무슨 영향을 주는지 알고서도 처치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순전히 제 실수이니 약한 생명체의 탓을 할 수도 없다.
뒤늦게 제 악성을 깨닫고서 혀를 찬 존재는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쓰러진 생명체에게 다가간다.
심박이 약한 것을 보아 악성을 마주하고 놀라 기절한 모양이지.
제가 소환해놓고 방치하더니 멋대로 기절까지 한다.
‘덜떨어졌군.’
소환자에 대한 감상을 마친 존재는 사슬을 부려 생명체를 다치지 않게 들어올린다.
용건을 듣기 전 까지는 멀쩡하게 둘 생각이다.
기척이 오래 머물렀던 장소로 발을 옮기자 좁아터진 ‘잠자리’에 가까운 무언가가 보인다. 참으로 소박하고 가난한 소환자라 할 수 있겠다.
사슬과 말뚝은 저 알아서 생명체를 내려놓고 돌아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존재는 시간에 의미를 두지 않지만 살아있는 것 들은 시간에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환된 입장에선 용건없이 오래 머무는 것이 좋을 리 없다.
해가 저 너머에 몸을 눕힐 즈음, 생명체가 신음을 웅얼거리더니 벌떡 일어난다.
“흐아아아악!!!”
질겁하다 못해 당장 도망갈 것 같은 기세로 울부짖던 생명체는 숨을 가다듬고 눈물을 닦아내며 제 몸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쉴 새 없이 덜덜덜 떠는 몸과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오른 꼬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애쓰는 모습이 가엾기까지 하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눈물을 적당히 닦아낼 즘, 다시 누우려는 듯 몸을 꿈질거리기에 불쾌해진 존재는 고개를 숙여 생명체와 시선을 맞춘다.
[언제까지 미적거릴 셈이지?]
분명 덜덜 떨고있던 몸과 눈동자가 뚝 멎는다. 바쁘게 땀과 눈물을 닦던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만히 멈춰서있다.
‘아, 유일신이시어…….’
식어내리는 안색과 옅어지는 눈빛을 놓치지 않는다.
“아악!”
두터운 사슬로 팔을 묶어 당기자 고통에 놀란 몸이 정신을 붙잡는다. 약해빠진 몸은 쇠사슬의 힘에 으스러질 수 있지만 존재는 그 가능성조차 신경쓰지 않는다.
[나를 소환해놓고 또 기절하려 들다니.]
끼기긱, 쇠사슬과 뼈가 긁혀 싫은 소리가 남에도 둘 중 어느쪽도 신경쓰지 않는다.
[시간을 낭비한다면 지금 당장 죽여주마.]
침대에서 끌어내려진 생명체는 힘을 이기지 못해 질질 끌려, 존재의 앞에 억지로 세워진다.
바로 코앞에 마주한 ‘악신’의 얼굴은 그 이목구비 하나 찾아볼 수 없이 어둠으로 감춰져있으나, 썩어 문드러진 틈으로 드러난 이빨과 뼈만큼은 하얗게 드러나있다.
피부가 베이고 뼈가 발려나갈 것 같은 살기. 살점 하나하나가 썩어내려갈 것 같은 악기.
점점 형태가 완전해지는 성화를 노리고 시끄럽게 울기 시작하는 말뚝의 소리까지 어느 하나 공포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사, 사… 살려주세요! ㅁ, 뭐든 할 테니 살려주세요..!!!”
‘히익, 히이익!! 마녀, 마녀살려!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 수장님, 수장대리님 살려주세요! 유일신님 살려주세요! 아이고, 유일신님 살려주세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생명이 품은 소리 정도는 훤히 들린다.
‘살고 싶다는 생각 뿐인가.’
시끄럽기 짝이 없을 정도로 열렬하게 살려주세요, 만을 반복하는 생명체를 내려본 악신은 고개를 느리게 기울인다.
[뭐든 하겠다?]
악신의 고갯짓을 더 시끄럽게 하면 죽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라도 한걸까.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반응을 보아 뭘 시켜도 할 것 같은, 생존본능만 가득한 생명체의 반응에 악신의 살기와 악기가 가라앉는다.
‘잘 됐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거나 쓸모없는 소원을 비는 피조물이라면 영혼까지 썩혀버릴 생각인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민다.
그 빈 손 안에서 뼛조각이 하나씩 뭉친다. 뼈를 부수고 뭉게는 소리가 끔찍해, 생명체의 얼굴이 역겨움에 일그러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악신의 손안에 짐승의 척추와 갈비뼈를 이리저리 엮어만든 듯한 ‘성배’가 완성된다.
완성된 잔은 저 알아서 검은 액체를 꿀럭꿀럭 만들어낸다.
성배가 만들어내는 물이 성수라면 저 물은 악수(惡水)라 할 수 있을까. 수 백년을 사는 마녀들도 성수 구경은 힘든데, 그보다 희귀한 악수를 본 경험이 있을 리 없다.
그럴 리 없건만, 저 잔 안의 액체가 저 알아서 끓어오르고 회색 연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데다 그 연기마저 사람의 비통한 얼굴로 보이는 것만 같다.
[그러면 계약을 해라.]
당연하다는 듯 계약을 요구한 악신은 저 혼자 허공에 둥둥 떠있는 성배위에 손뼈를 올리더니 스스로 으스러트려 피를 뽑아낸다.
카드드득, 콰득, 하는 소리가 섬뜩하기 짝이 없다.
뼈로 된 손에서 피를 뽑아내는 광경에 넋이 나간 생명체, 마녀는 사슬에 묶여있던 제 손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린다.
언제 풀려있었는지, 날카로운 말뚝이 손바닥을 깊게 베고서는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흥건히 묻히고 있다.
말뚝이 제 주인(?)에게 돌아가, 잔 안에 피를 뿌리자 검은 액체의 끓어오름이 멈춘다.
악신은 당연하다는 듯 성배를 들어 그 것을 한모금 들이켰고 남은 잔을 마녀에게 건넨다.
“잔을 비우고, 이름을 말해라.”
뼈로 만들어진 불길한 성배. 그 안에 담긴 불길한 액체.
분명히 시꺼멓게 끒어오르던 이상한 액체는 어디가고 무색투명한 무언가가 물처럼 찰랑거린다.
가까이서 보니 틈없이 메꿔진 듯 해도 군데군데 구멍이 있다. 평범한 액체와 평범한 잔이라면 내용물이 넘치고도 남을텐데, 단 한방울도 바깥으로 흐르거나 넘치지 않는다.
어딜봐도 불길하기 짝이 없으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눈을 질끈 감은 마녀는 큰 마음을 먹고 잔을 기울인다.
“끄으흡!?!!!”
‘마, 마… 맛없어!! 완전, 끔찍, 으..! 아, 우와아아…! 이게 무슨, 이… 핵노맛…!’
평범한 물처럼 찰랑이기에 확 들이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점도가 높아 끈적끈적하다. 혀와 입안에 휘감기는 감각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냄새는 역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걸 차마 무어라 설명해야할지 알 수 없는… 마치 썩은 버섯과 과일을 무쳐서 독약에 버무린 것을 차마 어떻게 할 수 없어 돼지의 변에 버린 듯한 느낌이다.
여러모로 구역질이 치솟는 냄새는 숨을 참으면 막아낼 수 있지만 맛은… 정말 맛은……!
쓰고 떫은 정도면 차라리 양호하다. 덜 익은 감을 응축시킨 쓰고 떫고 풋내나는… 거기다 묘하게 시큼한데다 술맛이 가시지 않은 입에서는 토악질을 부추기는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역겹고 맛없을 일인가! 맛 없는 것으로 소름이 돋는 건 제 친구의 요리 이후로 처음이다!
악신의 성배라도 맛은 좀 정상적으로 놔두면 누가 죽인다는건가!
한 모금밖에 넘기지 못해 남은 양은 두 모금, 많으면 세 모금 정도다. 한 모금도 고통스러운데 이걸 두배, 세배를 참으라니..!
‘으… 아직 많은데, 이걸 못 먹겠다고 하면…….’
마녀는 한껏 찡그린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악신의 얼굴을 힐끔거린다.
얼굴을 가린 천자락조차 움직이지 않는 악신은 그 눈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지 못해도 마녀를 지켜보고 있음은 확실하다.
‘죽겠구나…!!’
못 마시겠다고 해서 죽나, 마시고 죽나!
어느쪽이든 죽는다면 살해당하는 쪽은 피하고싶다! 라며 두눈을 더 세게 감은 채 잔을 억지로 비워낸다.
“우욱..! 웁, 우윽, 웩… 컥… 끕…”
가슴을 퍽퍽 치며, 내려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내려보낸 마녀는 다른 의미로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바, 밤의… 장막 뒷면에서 태어난… 짐승의 후예…….”
악마와 계약을 할 때는 자신의 근본과 소속을 완전히 밝혀, 영혼과 피의 존재를 명백히 해야한다.
가명을 쓰거나 거짓된 소속과 혈통으로 계약을 하면 악마의 분노와 저주를 사, 그 자리에서 죽는 일이 허다하다.
“서, 서른 여섯 번 째의… 지… 우윽, 진리를 탐구…”
아아, 입안에서 썩은 냄새와 맛이 맴돌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
전 날의 숙취가 다시 솟아나는 감각을 억지로 참아내는 마녀의 노고가 눈물겨울 정도다.
“탐구하는 자들… 페르티카 둑스(Pertica Dux)의 시, 시얀 펠레스… 계약의 주인 되시는 분을… 웁, 뵈, 뵙습니다.”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을 맺는 광경을 보고도 악신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을 겨우 해내는 것을 보고 한심하기 짝이없다는 시선이 내리꽂힌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이제 너는 내 첫 번째 종이다.]
악신이 계약을 공표했으니 이제 그 끔찍한 성배 속 괴식에서도 해방이다! 하며 기뻐할 틈이 없다.
‘첫 번째 종’ 은 쉬이 입에 담을 수 없는 호칭이다.
“저, 저기… 가호로 내리는 ‘첫 번째’의 이름은 보통 해당 교파의 교황…에게 부여되는게 아니던가요?”
[그렇다. 덜떨어진 마녀주제에 기본은 아는 모양이군.]
‘덜떨어진게 문제가 아닌데요! 호칭이, 이름이 문제인데요! 악신의 첫 번째 종이라니, 이단인데요! 이단중에서도 최악의 이단인데요! 이게 알려지면 무조건 처형 아니면 화형, 아니면 오체분시, 교수형…!’
달달달 떠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며 악신을 올려보고 있자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주체할 수 없이 휘말리는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종을 내려보던 악신은 평이한 목소리로 제 할 말만 뱉는다.
[소환의식은 엉망이고 산제물은 없고 신도마저 없는 채로 나를 소환하다니, 불경하기 짝이없으나 공물이 나쁘지 않았으니 넘어가마.]
공물?
난데없는 공물의 언급에 잠깐 의아해하던 마녀는 자신이 소환진을 만들었을 연구실과 이어진 술 창고를 떠올린다.
술 창고. 남자와 눈이 맞아 자신을 버리고 홀라당 도망 간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가 남기고 간 쪽지에 ‘청첩장 보낼게~’ 라는 예쁜 글씨체가 떠오른다.
‘진심으로 신혼집 부숴버릴거야. 진짜로.’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친구. 그의 청첩장이 부고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어버리는 지금의 상황을 어찌하면 좋을까.
머리가 지끈거리는 마녀를 지켜보던 악신은 무언가를 파악한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재능은 빈약해도 원한은 그럭저럭, 쓸만하군.]
원한이야 이유가 있으니 그렇지요. 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려 시선을 피한다.
[소원이 있느냐.]
악마도 아니고 악신의 도움이라니. 제물이 뭐가 될지 몰라 뒷골이 섬뜩해진다.
“그… 어, 소원… 음…”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을 입에 담는다.
“이제 되돌아가 주시는 거… 헉, 아, 아니… 왜 화내시는… 힉!”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악성때문이기도 하고 본능적인 정신보호 때문에 악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기색이나 분위기가 읽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머리 뒤의 성화가 꾸득 뿌득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움직여댄다.
“그, 그럼 그거 말고! 커, 커플브레이커… 는요?”
[이 땅에 뿌리박힌 이들이 육신의 교접을 시도하는 순간 전신을 터뜨려 죽일 순 있다.]
“안돼애애!!!!”
이 무슨! 스케일이 크다 못해 대륙급으로 다 죽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악신의 대답에 바로 질문을 철회한다.
[애정이 없는 교접에는 힘을 쓸 수 없다.]
그렇게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 TMI를 들은 마녀는 제 귀를 양 손으로 막아보았지만 악신의 목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존재, 영혼 그 자체로 울리는 소리니 귀따위를 막아봤자 들리지 않을 리 없다.
귀머거리조차 ‘들리게’ 만드는 것이 성음이라 하지 않는가.
“으으, 왜… 왜 돌아가주시는게 안되는건가요…….”
저는 조용히 연구하며 평온하게 살다가 노년이 되면 풍요롭게 놀고 먹는게 소원인데요, 하며 우는 소리를 하는 마녀를 보고있으면 누구라도 측은하게 느끼리라.
문제는 상대가 악신이며 악신은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보다 한심함을 먼저 느끼는 존재다.
[…… 내 첫 번째 종에게 알려주마.]
악신을 소환하고 그 첫 번째 종이 된 주제에 악신이 무섭다며 징징대는 꼴을 보고 좋아할 순 없지 않는가.
그나마 도움이 되는 정보를 하나 쥐여주고 제게 순종적이게 만들면 우는 소리는 덜 듣겠거니, 하는 적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인간보다도 인간 같은 모습이다.
[내가 지상에 내딛음을 모든 것이 알고 있으니, 내 존재를 무로 돌리고자 하는 놈들이 너를 노리리라.]
네가 나를 소환한 건 이미 다 까발려졌으니 넌 이제 죽어. 라는 말을 고상하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뭐…”
[너는 일주일 안에 죽을 것이다.]
당황하여 입을 열려는 마녀의 말을 잘라먹은 악신은 아예 기간까지 정하여 죽을 날짜를 점지하고 있다.
“잠깐만요! 살려달랬더니 죽음을 예언하다뇨…!?”
어이가 없는지 겁먹은 표정마저 무너진 채 진심으로 화를 터뜨리며 펄펄 뛰던 마녀는 공황이 왔는지 머리를 감싸고 제 자리를 서성댄다.
[모자란 종에게 가르침을 줬거늘, 화를 내다니 건방지구나.]
“죽는다는 예언에 침착할 사람이 어딨어요!!”
아, 물론 악신정도 되면 ‘너 일주일 안에 죽어’라는 말을 들어봤자 콧방귀도 뀌지 않으리라.
그딴 말을 하는 놈이 살아있을리는 만무하고, 일주일 안에 악신을 죽이거나 소멸시킬 정도의 힘은 유일신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고작해야 봉인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었으니.
“아, 아으… 역시 이 분은 악신이긴 한데, 아…! 진짜 큰일났네…! 아으으, 이건 진짜 이단인데. 난 이단들의 금서 같은 것도 본 적 없단말야…….”
자포자기에 가까운지 ‘주신님, 주신니임… 저는 헌금도 자주 내고 기도도 자주 했는데요…’ 하며 반쯤 울어대기 시작한다.
가만히 지켜보던 악신은 묘하게 기분나쁜 기색을 드러내며 사슬을 움직여 마녀의 뺨을 눌러대며 공격한다.
[빌 곳이 잘 못 되었다, 덜떨어진 녀석.]
으으, 으으으… 하며 울먹이는 마녀가 듣든 말든, 제 할말만은 선명하게 토해낸다.
[너는 나의 첫 번째 종이며 내가 너의 신임을 자각해라.]
감히, 제 신을 앞에 두고 다른 신을 찾으며 울다니. 아무리 상대가 악신이라도 신성모욕에 해당하는 질 나쁜 행동이다.
평범한 악마는 뿔과 날개, 꼬리로 제 강함을 드러내지만 악신은 신과 같은 후광으로 자신의 강함을 드러낸다.
다만 악신은 광휘를 두르지 못하므로 형체가 있는 성화를 가지게 된다. 후광, 광휘, 성화. 어느것이든 그 신의 힘과 지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완성된 한 줄기 만으로도 한 세계의 신이라 불릴 정도인데, 악신은 완성된 성화만 두 줄인데다 완성된 형태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악성이 드높기로는 유일신, 주신과 맞먹는다는 소리다.
그런 신 앞에서 다른 신을 부르짖으며 살려달라니 도와달라니 쓸데없이 징징거리는데 좋아할 리 있겠는가.
[이대로 돌아가기엔 네가 미덥지 못하니, 몸을 지킬만한 사역마를 불러봐라.]
실수든 우연이든 악신을 부를 정도의 실력이다. 뭘 불러서 사역시키든 웬만한 것들은 단숨에 굴복시키리라.
그렇지 않더라도 제 몸을 보호하고 피신시킬 ‘재대로 된’ 악마정도는 하나라도 데리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연속 세 번의 시도가 아주 깔끔하게 실패할 때 까지만 해도.
악신은 제 첫 번째 종의 한심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욕심이 없는 수준은 태초의 신관과 맞먹을 정도이기에 힘도 그정도는 되겠거니 생각했다. 좀 모자라고 덜떨어졌으니 절반정도는 하리라 예상했다.
그걸 깔끔하게 무시하고, 저렇게 한심한 것을 소환하는데에 이리 시간을 들이는 꼴을 보고있자니 평생 없을 한숨이 나올 것만 같다.
[…뭐하는거지? 지금 세 번째 실패다.]
자신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하는건가.
신도가 있었을 무렵, 자신에게 검으로 맞서보려는 전사가 있었던 때 보다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 놈은 용기와 기개라도 있지만 이 종은 겁만 많지 않은가.
“자, 잠깐만요! 소환은 특기가 아니라서 그래요! 한 번만 더 해볼게요!”
마지막 시도라는 듯 외치며 치마에 묶인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는 모습에 악신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 피를 소환진에 떨어트리고 나서야 핏방울이 검게 녹아, 뭉치고 커지더니 그림자 덩어리가 연기처럼 솟아올라 뭉친다.
비슷한 나잇대의 마녀라면, 소환에 특기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그림자 혹은 사역마를 다루는 것을 대단하게 여길터다.
마녀 본인도 처음 계약할 때 제법 애를 먹었던 ‘네 개의 눈’은 계약하기는 어렵지만 계약후에는 그림자중에서 가장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종에 속한다.
웬만한 물리공격은 막아내는데다, 주인을 숨기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능력도 탁월하다.
소환할 때 솟아나는 모습이 외형적으로도 제법 위압감을 주니 여러모로 쓸모가……
제 형체를 갖춘 그림자가 네 개의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자마자 크게 움찔거리더니 마녀의 뒤로 몸을 숨긴다.
덩치가 커서 다 가려지지도 않는데,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는 우우, 우우…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악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
[…… 후우….]
애초에 네 개의 눈은 회피, 정확히 말하면 도망에 특화된 그림자다. 그마저도 어리숙하게 약하고 겁이 많아서 계약자가 다치면 바로 도망쳐버린다.
그림자 특유의 생명력으로 공격을 ‘버티는’건 하지만 그것도 일정 이상이 되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스러져버린다.
악신을 소멸시키겠다 덤비는 놈들에게는 손가락 튕기기보다 더 쉬운 상태임이 틀림없다.
[정정하마.]
저런 것을 피까지 써가며 소환할 정도면, 마녀의 실력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너는 내일 안에 죽는다.]
그야말로 확신에 찬 예언은 마녀를 향한 한심함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외면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 아니 왜요!? 얘가 소환이 느려도 도망은 잘 치는…!”
[모자른 놈.]
분명 혀 찼어. 혀, 혀를 찼다고!
마녀의 말을 잘라먹은 악신의 말머리에는 분명 혀 차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도 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혀를 찼다.
[기껏 만든 첫 번째 종이 덜떨어진 녀석이니, 제 몫을 할 때 까지 머무르겠다.]
일방적인 통보에 마녀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든다.
악신을 소환하고 계약한 것 만으로도 죽겠는데 이제는 머무르겠단다, 아예 대놓고 붙어지내겠단다!
이게 무슨 지옥, 아니 좀 더 줄여서 족 같은 일일까.
[현세의 강림에 필요한 제물을 준비하도록.]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이어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악신을 위한 제물. 악마를 위한 것도 아니고 ‘신’을 위한 제물을 바쳐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네 힘이 부족하니, 스물의 목숨으로 충분할 것이다.]
시간은 일주일이면 되겠지. 라는 말을 덧붙이며 약간 부족하다는 듯 고민을 하는 태도는 여상하기 짝이없다.
저렇게까지 여유로운 분이시면 직접 하시지!
스물의 목숨, 악신, 악신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머릿속에서 부합시키는 제물의 종류를 떠올리자 마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식어내린다.
“그… 제가 아는 존재시라면… 들짐승은 아니겠죠…?”
[생각하는 그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악신에게 무어라 말할까. 쓰린 속을 억지로 삼키며 신음을 웅얼거린다.
되는 한 온갖 말들을 토해내며 악신을 설득하고 싶을 지경이다.
아뇨, 저기요, 악신이 되시기 전에 어떤 신이셨는지 아시잖아요. 하며 제 상황을 최대한 이해시키고 싶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전, 전쟁과 전사의 신. 영광과 불사의 신. 승리를 기원하는 전사들의 심장과 피로 광휘를 얻은 신이 아닌가.
그러한 악신의 기준을 부합하려면 전장에서 죽은 건장한 전사, 혹은 기사의 깨끗한 시신이 스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부패가 진행되지 않아야한다.
“으으….”
그런 시신이나 제물을 준비하는 건 마녀 혼자서의 힘으로는 절대로 무리다. 주변의 마녀가 도와주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의심받을 것이 확실하다.
마녀는 지식과 깨달음을 계승하는 마녀이지 치료와 육신을 다루는 마녀가 아니다.
시신 한 구라도 의심을 받을 상황에 스물이다.
모든 마녀들은 악신에 대해 알고 있으니, 악신과 엮였다는 사실을 알리자마자 페르티카에서도 퇴출될 확률이 높다. 운이 좋아 퇴출되지 않더라도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기 어려워진다.
이래도 되는걸까. 하지만 죽는다는데 방법이 있나, 퇴출되든 말든 일단은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주, 준비해보겠습니다.”
확신이라고는 먼지 한 톨 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지만 악신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용건을 끝내고 나니 힘이 주욱 빠져, 비틀거리던 마녀는 자리에 주저앉는다.
소환해놨던 네 개의 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제 멋대로 소환을 해제하고 돌아간 흔적이 있다.
악신의 앞에서 오래 머물고 있다간 눈밖에 나다 못해 소멸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후다닥 도망간 모양이다. 소환자인 마녀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신속 정확하게 도망간 솜씨를 보아 한 두 번 도망간 실력이 아니다.
악신이야 도망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으나, 겨우 대화가 가능한 첫 번째 종에게 겁을 주는 것은 사양하고 싶어 손을 대지 않았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자러 가보겠다는 마녀를 돌려보낸 악신은 처음 있었던 술 창고로 발길을 옮긴다.
마녀의 머릿속을 제 손바닥 보듯 읽어내던 악신이다.
술 창고의 술이 누구의 것 인지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알고 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취하는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벌써부터 모든 종류를 한 병씩 마셔보았는지, 제 입에 맞는 술병 하나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총량 4L짜리의 유리병이다. 무겁기도 상당히 무거운 탓에 마녀와 마녀의 친구는 양손으로 겨우겨우 들어올리던 무게임에도 솜털 들어올리듯 가벼운 손길이다.
문제는 저것이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 표본을 만들기 위한 소독용이라는 점일까.
못 마시는 것은 아니나, 마시면 말 그대로 ‘가버리는’ 물건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병목을 손끝으로 잘라낸 악신은 벌어진 입 안으로 술을 들이 붓는다.
전신이 썩은 탓에 뼈밖에 남지 않은 몸 어디로 술이 사라지는지 알 수 없으나, 벌컥벌컥 들이키는 소리만큼은 확실하다.
그 술이 한 병 반 정도 비워졌을 즘, 샤워를 끝내고 잠자리에 드는 마녀의 기척과 낯선 것의 무리들이 악신의 신경을 건드린다.
[빠르군.]
오늘 안에 죽느니 내일 안에 죽느니 예언했지만 그것은 겁을 주기 위한 장난에 가까웠다. 진담이 약간 섞여있었으나 악성의 예언일 뿐이다. 신성이 아닌 이상 ‘잘 맞진 않는다.’
그렇다면 이른 밤중의 예언은 자신의 악성이 아니라 신성에 의한 확신이 된 셈인가.
악신이라 하더라도 신은 신. 타락하여 악신이 된 탓에 아직도 제 신성이 남아있어,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것이 제 첫 번째 종의 죽음에 관한 예언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사실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아닌 척 점잔빼는 태도는 제 것이 아님을 악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제 눈에 잡히는 것은 서른 남짓.
제 첫 번째 종이 울며 찾던 유일신의 종들이 우르르 몰려왔다는 사실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건장한 전사 스물의 목숨을 바쳐야한다는 사실에 사색을 보이던 마녀의 걱정은 고작 서너시간만에 해결될 상황이다.
‘좋아하겠군.’
심약한 마녀의 정신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제 생각과 짐작만이 옳다는 듯 담담히 결론지은 악신은 반만 비워진 병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난다.
‘완전히 잠들었을 때 돌입한다.’
‘악신을 부르기 전에 목을 베고 심장을 찔러 단번에 죽여야한다.’
‘주변을 포위하고 도주 시 악마부터 노려야한…….’
[쉿.]
악성을 담은 명령이 흐르자 성기사들의 입이 틀어막힌다. 제약이 있더라도 이정도의 명령은 제 아무리 신의 힘을 빌린 기사라 하더라도 벗어나지 못한다.
[시끄럽다. 빛의 개들아.]
절그럭, 무거운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고 날을 세운 말뚝이 바닥을 요란하게 긁어대며 악신의 움직임을 막아선다.
타락한 신이라면 완벽한 원형의 성화를 만들 수 없음에도, 한 개의 성화는 벌써 완벽한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 탓에 네 개의 말뚝 중 세 개가 땅에 박혀있으나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서 악신의 악명이 바닥에 떨어질 일은 없다. 오히려 그 악성이 올랐다면 모를까.
안그래도 전사들의 목숨이 필요했건만. 이렇게 산채로 보내주다니, 유일신의 협조성을 고마워해야하는지 멍청함을 통탄해야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땅에 박힌 말뚝조차 힘으로 끌어내며 집밖으로 나와 선 악신의 눈앞에는 하얗게 주조된 갑옷을 입은 서른명의 성기사들이 일렬되어있다.
시끄럽다 명했을 뿐이거늘. 몸까지 제어당해 정리되어있다니.
상대가 악신이라는 사실을 잊은건가? 아니면 제 신을 닮아 협조성이 좋은건지 멍청한건지…….
악성에 대한 면역조차 키우지 않은 자들을 한심하게 훑어보니 이미 그들중 서넛은 심장이 멈춰, 서 있던 몸이 무너진다.
가까이 가진 않았으나 분명 눈알과 혀, 가슴과 뱃속이 전부 녹은 채 죽었을 것이다. 머리통은 물렁물렁하게 녹아, 뼈조차 제 기능을 하지 못했으리라.
영혼정도는 구제해주겠다 약속하기도 전에 죽어버렸으니, 저 영혼은 벌써 부식되어 사라졌을 터다.
저 영혼 하나 하나가 제 업보이자 사슬의 무게, 말뚝의 무게가 되어 제 몸을 구속할테지만 본래부터 그 무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움직이는데 조금 거슬리기야 하겠지만 그뿐이다.
[악신 움브라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너희의 영혼은 주인에게 돌아가리라.
조금 썩을테지만, 그 잘나신 ‘아버지’가 돌봐줄 테니 그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죽거리는 꼴은 신이라 보기엔 너무나 불량하기 짝이없다.
이래서 악신인가 싶을 정도로 성질이 더럽기 짝이없다.
악신의 처형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악성을 드러내고 근처에 다가가기만 하면 알아서 픽픽 죽어 녹아버리니, 그것을 거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다 제 이름을 걸고 영혼정도는 돌려주겠다 공언했으니 말뚝의 방해도 조금 느슨해진다.
멍청한 구속력이지 않은가.
생명은 얼마를 죽여도 상관없으니 그 영혼만 손상시키지 않으면 제제를 가하지 않겠다는 무른 태도가 구속력에서부터 느껴진다.
제 타락과 악성조차 제대로 제어치 못하는 구속은 첫 번째 종, 마녀의 신앙심에 밀려 사라질 것이 뻔하다.
문제는 뭐만 했다 하면 주신님, 유일신님 하며 제 속을 긁고 신앙심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징징거린다는 점이지만 이런 식으로 목숨을 구해주다보면 저 알아서 신앙심을 드높이리라.
모든 종교가 그러했고, 모든 종교의 첫 번째 종이 그러했듯이.
“커, ㅇ… 끄…….”
“꺼으…! ㅇ…”
악신의 현신을 마주한 기사들은 숨이 막히는 듯 컥컥대는 소리와 가래끓는 그르륵거림을 잠깐 토해내며 도미노처럼 주르르 무너져내린다.
시신은 금세 부식되어 핏물조차 남기지 않고 살점 하나, 뼛조각 하나 없이 회색 모래처럼 부스러져 사라진다.
[…….]
참으로 허망하고 값어치 없는 생명들이다.
신이었을 때도, 악신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에 실증을 느낄만 하건만, 인간이 모래를 흩날리는 것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다.
유일신이니 주신이니 뭐니 떠받들여지는 ‘그것’ 또한 제 신도가 죽건말건 모래알 흩날리는 기분으로 그러려니 하고 있으리라.
멍청한 놈.
혀를 차며 몸을 돌린다. 악성으로 이것저것 먹어치웠더니 입안이 텁텁해, 마녀가 바친 공물이 더 필요할 성 싶다.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 [REQUEST] Love is (0) | 2019.09.22 |
|---|---|
| [COM] Meus Cimelium (0) | 2019.04.08 |
| [SCRAP] LADY ENRICA (0) | 2019.02.26 |
| [DREAM AU] Privatter 01-08 (0) | 2019.01.03 |
| [VER NIX] 03. DIRUS (0) | 2018.11.20 |